본문 바로가기
중년신체탐구

갱년기 이후 핸드폰 비밀번호가 생각 안 나는 이유?

by hhs1205 2025. 7. 5.

잠깐이면 기억날 것 같았는데… 머리맡에서 사라지는 숫자의 단서들

갱년기 전후로 많은 여성들이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기억 혼란을 경험하게 됩니다.
단순히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라거나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헷갈린다’는 정도를 넘어서, 집 앞에 서서 현관 비밀번호가 한순간에 기억나지 않는 상황, 혹은 ATM 비밀번호, 휴대폰 잠금 패턴이 일시적으로 떠오르지 않는 이상한 공백 상태를 겪곤 합니다.

이런 순간은 단순히 ‘깜빡했다’고 넘기기엔 뭔가 낯설고 당혹스럽습니다.
왜냐하면 해당 정보는 분명 수십 번 반복적으로 사용해 온 내용이고, 자기 신체 동작과 감각에 완전히 내재화되어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어느 날 갑자기, 단 몇 초 동안 그 정보가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듯한 느낌은 기억력 저하를 실감하게 하며, 때로는 본인의 인지 능력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은 단순한 건망증의 연장선이 아닙니다.
이 글에서는 갱년기 여성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작업 기억(working memory)’ 시스템의 변화, 그리고 이를 조율하는 전두엽과 해마의 시냅스 밀도 감소가 어떻게 일상적인 숫자 정보 회상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신경생리학적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작업 기억이란 무엇인가 : 머릿속 임시 메모장의 역할

‘현관 비밀번호’를 떠올리는 행위는 단순한 기억 회상이 아닙니다.
그 순간 우리의 뇌는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이라는 단기 저장 시스템을 통해 숫자 정보를 잠시 꺼내와 재조합하고, 손가락의 운동 기억과 연결시켜 입력 동작으로 이행합니다.
이 과정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매끄럽게 진행되어야 하며, 중간에 하나라도 단절되면 숫자 열을 앞에 두고도 입력을 망설이거나, 순서를 뒤섞게 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작업 기억은 뇌의 전두엽(Prefrontal Cortex)에서 주도하는 기능으로, 단기 정보 저장, 주의 집중, 정보 조작 및 의사결정과 같은
일시적이고 복합적인 정보 처리의 중심 허브 역할을 합니다.
특히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숫자, 일정, 주소, 비밀번호처럼 외우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저장된 정보는 작업 기억의 하위 단위인 음운 고리(Phonological Loop) 또는 시각-공간 스케치패드를 통해 잠시 저장되고 필요할 때 빠르게 불러와 행동으로 전환됩니다.

하지만 갱년기 이후 에스트로겐이 감소하면, 이 전두엽 영역의  시냅스 연결 밀도(synaptic density)가 감소하고 정보 전환 속도, 저장 유지력, 주의 집중의 유연성이 저하됩니다.
그 결과, 원래는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재구성되던 숫자 배열이 중간에서 끊기거나, 숫자 순서를 바꾸어 기억하거나, 아예 다른 장소에 저장된 기억으로 전환되는 착오가 생깁니다.

간단히 말하면, '기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메모장에서 꺼내오는 속도가 늦어진 것’에 가깝습니다.
더욱이 같은 작업을 동시에 처리하려 할 경우 예를 들어 현관 앞에서 전화를 받으며 비밀번호를 입력한다든가, 생각이 다른 데로 향한 상태에서 자물쇠를 열려 한다든가 하면 뇌는 작업 기억의 전력을 분산하게 되고, 그 결과 숫자 기억의 호출이 순간적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갱년기 여성과 ‘현관 비밀번호’ 기억 실패의 기제

 

에스트로겐과 시냅스 연결: 뇌 회로의 생물학적 재편성

폐경을 지나면서 여성의 몸에서 가장 먼저 급변하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에스트로겐 수치의 급감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 호르몬을 생식과 관련된 역할로만 생각하지만, 실제로 에스트로겐은 뇌의 특정 부위, 특히 ‘기억’과 ‘집중력’에 깊이 관여하는 영역에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이 호르몬은 단지 기분을 조절하거나 감정 변화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뉴런 간 신호를 주고받는 연결 고리인 시냅스를 생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뇌에서 해마(Hippocampus)는 정보를 기억하고 저장하는 ‘기억의 도서관’ 같은 역할을 하고, 전두엽(Prefrontal cortex)은 그 저장된 정보를 꺼내어 필요한 순간에 사용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조율하는 ‘도서관 사서’ 역할을 합니다.
이 두 부위는 모두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밀집된 뇌 부위이며, 이 말은 곧 에스트로겐이 뇌 회로의 유지와 신호 전달에 반드시 필요한 호르몬이라는 뜻입니다.

에스트로겐은 시냅스를 새로 만들도록 유도하고, 이미 존재하는 시냅스의 가지를 더욱 복잡하게 가지치기하게 하며, 뉴런 간 신호 전달 속도를 빠르게 만들어 줍니다.
이러한 작용은 특히 반복적인 숫자 기억—예를 들어 현관 비밀번호, 카드 비밀번호, 자주 다니는 경로의 주소 등—를 자연스럽게 뇌의 단기 저장 공간에서 꺼내어 행동으로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폐경 이후 에스트로겐 수치가 급격히 줄어들게 되면, 이런 신경 회로의 복잡성과 탄력성 역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시냅스 밀도는 줄고, 뇌 내부의 정보 네트워크는 이전보다 단순화되며, 특히 정보를 빠르게 ‘호출’하는 능력이 저하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기억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꺼내는 능력이 약해진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현관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입력하려는 순간 그 숫자 배열이 '입 안에서 맴도는 말처럼' 떠오르지 않을 때, 그 정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해마에 저장된 채로 남아 있지만 전두엽에서 꺼내는 경로가 일시적으로 흐려졌거나 혼선이 생긴 상태일 수 있습니다. 마치 컴퓨터의 바탕화면에 있는 파일을 열려고 했는데 순간적으로 아이콘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과 유사한 것이죠.

이러한 뇌 회로의 생물학적 변화는 모든 여성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개인의 생활 습관, 스트레스 수준, 수면의 질, 운동 여부에 따라 시냅스 밀도의 회복 탄력성에도 차이가 생깁니다.
즉, 에스트로겐의 감소는 피할 수 없지만, 그로 인한 신경 회로 약화를 완전히 ‘방치된 결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처럼, 갱년기 이후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는 현상은 건망증이라는 이름 아래에 단순화될 수 없는, 뇌 회로의 미세한 구조적 변화가 일상생활에서 드러나는 생리학적 현상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억 혼선의 환경 요인: 멀티태스킹과 집중력 분산의 함정

갱년기 여성의 기억 혼란은 단지 생물학적 호르몬 변화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뇌는 항상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기능을 유지하기 때문에, 생활 패턴, 정보 처리 방식, 멀티태스킹 습관 역시 기억 오류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요즘처럼 많은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고, 끊임없이 스마트폰 알림에 반응해야 하는 일상 속에서는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의 부담이 매우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작업 기억은 말 그대로 머릿속의 임시 메모장입니다. 새로운 정보를 잠시 저장하고, 비교하고, 다음 행동으로 연결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이 메모장은 용량이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오면 일부가 밀려나거나 중요한 정보가 덜 우선순위를 받아 소외될 수 있습니다.

갱년기 이후 이 메모장이 에스트로겐 감소로 인해 처리 속도와 유지력이 약해진 상태라면, 멀티태스킹은 그 자체로 혼선과 충돌을 유발하는 원인이 됩니다.
예를 들어, 현관 앞에서 전화를 받으며, 한 손엔 장을 본 물건을 들고, 마음속으로는 ‘저녁 준비를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는 상태에서
비밀번호 네 자리를 기억해내는 것은 실제로는 뇌에게 상당한 ‘복잡한 연산’을 요구하는 일이 됩니다.

게다가 감정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갱년기 이후의 뇌는 스트레스와 불안 자극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런 감정 상태는 전두엽의 선택적 집중 기능을 저하시키고 정보의 인출 흐름을 방해하게 됩니다.
결국 뇌는 감정을 조절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고, 그 결과 기억 인출 기능에 배정되는 자원이 줄어들면서 숫자 하나를 떠올리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억 혼선은 단지 순간적인 현상에서 그치지 않고, ‘내가 왜 이걸 까먹지?’라는 자책으로 이어지면서
자신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부정적 순환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심리적 부담감은 또다시 집중력 저하와 주의력 분산으로 이어져 더 많은 기억 오류를 유발하게 되는 것이죠.

결국 우리는 갱년기 이후의 기억 오류를 단순히 ‘기억력 약화’로 단정 짓는 대신, 그 이면에 존재하는 정보 과부하, 작업 기억의 피로, 감정 에너지의 분산이라는 요인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맞춰 생활 리듬을 정돈하고, 한 번에 하나씩 집중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현관 비밀번호 같은 일상적인 기억 회상을 회복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기억력을 다시 정돈하는 루틴: 뇌의 회복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기억이 흐릿해지는 현상, 특히 일상에서 반복하던 작업조차 순간적으로 ‘끊긴 듯한 공백’을 경험하는 것은 많은 갱년기 여성들에게 당황스럽고 불안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뇌는 폐경 후에도 여전히 ‘가소성(plasticity)’이라는 회복 능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단지 새로운 방식의 접근과 루틴이 필요할 뿐입니다. 기억력은 일정 부분 선천적인 요소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얼마든지 회복되고 재조율될 수 있는 ‘활성 기능’이라는 점에서, 전략적인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선 첫 번째로 중요한 건 멀티태스킹을 줄이고 단일 작업에 집중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갱년기 이후의 뇌는 전보다 정보처리 속도가 느려지는 대신, 깊이 있는 주의 집중이 가능해지는 구조로 변화합니다.
이때, 이전처럼 동시에 여러 가지를 처리하려고 하면 뇌 회로는 충돌을 일으키고, 그 결과 작업 기억의 오류가 빈번하게 발생하게 됩니다.
가령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주변 자극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뇌의 집중 자원을 단일 작업에 온전히 배분하는 습관이 효과적입니다.

두 번째는 ‘기억 회상의 환경’을 조정하는 전략입니다. 기억은 정보 자체보다 그 정보를 떠올릴 때의 맥락과 감각 자극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예를 들어,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마다 익숙한 손가락 감각이나 주변의 시각적 단서, 시간대 같은 조건이 뇌에 함께 저장됩니다. 이런 맥락 정보가 다를 경우, 기억은 인출이 지연되거나 왜곡되기 쉬운데요.
따라서 매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정보는 항상 동일한 맥락에서 활용하는 습관을 들이면 뇌는 그 정보를 더 쉽게 불러올 수 있게 됩니다.
이는 학습된 정보에 ‘고정된 주소’를 만들어주는 것과 같아 현관 앞에서의 기억 실패 같은 상황을 줄이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세 번째는 신경계의 피로를 낮추는 생활 루틴입니다.
기억 인출이 어렵다는 것은 뇌가 무능해진 것이 아니라, 당시의 컨디션이 회로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과도한 카페인 섭취, 수면 부족, 야간 스마트폰 사용, 긴장된 대화 직후의 작업 기억 등은 모두 전두엽의 활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입니다.
이에 반해, 짧은 낮잠, 수분 보충, 복식호흡, 가벼운 스트레칭, 걷기 등은 미주신경을 자극하여 뇌 전체에 안정 신호를 보내며 ‘기억을 다시 꺼낼 수 있는 여유’를 부여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이 부분에서 큰 체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예전엔 외출 직전 급하게 이것저것 하면서 비밀번호를 까먹기 일쑤였지만, 최근에는 출입 전에 잠깐 눈을 감고 복식호흡을 한 뒤, 비밀번호를 머릿속으로 먼저 그려보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짧은 ‘멈춤’ 하나가 기억 회로에 꽤 큰 영향을 주더라고요.
기억은 기술이 아니라, 신호를 꺼낼 수 있는 상태로 뇌를 만들어주는 과정임을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네 번째는 의식적으로 뇌를 자극하고 회복시키는 활동을 일상에 넣는 것입니다.
단순한 암기나 반복 학습이 아니라, 뇌의 시냅스를 늘릴 수 있는 활동—예컨대 간단한 퍼즐 게임, 카드 매칭, 수 세기 놀이, 암산 게임 등—을 하루 5~10분만 꾸준히 해보는 것도 충분히 효과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공해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려고 뇌를 움직이는 행동 자체가 회복의 첫걸음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해마와 전두엽 간의 연결성을 자연스럽게 강화시키고, 시냅스가 활발하게 연결되는 방향으로 뇌 회로를 리세팅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이상해진 게 아닐까’라는 자책보다는 ‘내 몸이 바뀌고 있으니, 접근 방식도 달라야겠구나’라는 이해의 자세입니다. 기억력은 변하고 있지만 소멸된 것이 아닙니다.
호르몬 변화와 함께 뇌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고 있으며, 그 균형을 돕는 것은 외부 자극을 덜어내고 뇌가 정보에 천천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생활의 지혜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뇌는 끊임없이 연결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고, 약간만 정돈해주면 그 잊혔던 숫자 하나쯤은 스스로 떠오를 수 있습니다. 기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회복력이 강한 기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