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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신체탐구

폐경기와 '뇌-장 축(Gut-Brain Axis)' 변화: 불안감과 소화기 장애

by hhs1205 2025. 6. 3.

폐경기를 전후로 하여 많은 여성들이 경험하는 변화 중 하나는 바로 이유 없는 소화 불량과 불안감의 동반 출현입니다.
배가 자주 더부룩하고, 가스가 차고, 식사 후에도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계속되는데, 그와 동시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겁고 긴장감이 쉽게 풀리지 않는 상태가 반복되곤 합니다.
이럴 때 흔히 위장약을 먹거나 스트레스 때문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지만, 사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위장 문제가 아닌 '뇌-장 축(Gut-Brain Axis)'의 기능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뇌-장 축’은 말 그대로 뇌와 장이 양방향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하는 신경생리학적 시스템입니다.
즉, 장에서 발생한 염증, 긴장, 불균형이 뇌의 감정 회로에 영향을 주고, 반대로 뇌에서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되면 소화 기능도 함께 흔들리게 됩니다.
폐경기는 이 균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기입니다.
특히 에스트로겐이 감소하면서 장내 미생물 구성과 자율신경계 조절력이 약해지고, 그 결과 뇌-장의 연결이 예민해지며 소화기 증상과 심리적 불안정이 동시에 악화되는 것입니다.

저 역시 폐경 초기, 특별히 자극적인 음식을 먹지 않아도 속이 자주 더부룩하고, 잠자기 전이면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한 기분이 들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그저 '신경이 예민해졌나 보다'라고만 생각했지만, 조금씩 장을 돌보고 생활 리듬을 조절하면서 감정까지 함께 안정되는 경험을 하며 뇌와 장의 연결이 생각보다 훨씬 깊다는 걸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장내 미생물과 신경전달물질: 폐경기 이후 균형이 무너지면 생기는 연쇄작용

장에는 약 100조 개 이상의 미생물이 존재하며, 이들은 단순히 소화를 돕는 역할을 넘어서 감정과 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는 신경전달물질과 면역 조절 인자를 생성하는 생화학적 공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 부르며,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세로토닌, 도파민, GABA 등 뇌 기능에 필수적인 물질들의 생성에도 관여합니다.
특히 세로토닌의 약 90%는 장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은 뇌-장 축의 긴밀한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러나 폐경이 시작되면 에스트로겐이 줄어들면서 장 점막의 보호 기능이 약해지고, 결과적으로 장내 유익균의 수가 줄고, 유해균이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불균형 상태가 초래됩니다.
이러한 미생물 불균형은 장 점막에 미세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장 투과성 증가(Leaky Gut)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장내에서 생성되어야 할 세로토닌의 양이 줄고, 뇌로 전달되는 신경전달물질의 흐름이 불안정해져 우울감, 불안감, 감정 조절 어려움이 동반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장 점막의 염증은 자율신경계에도 간접적인 자극을 가해, 부교감신경의 기능을 저하시켜 위장관의 운동성을 저하시키고,
이로 인해 위 배출 지연, 가스 정체, 변비 또는 설사가 교차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에 따라서는 PTSD나 공황장애처럼 느껴지는 과잉 불안 반응이 장내 환경 변화만으로 유발되기도 합니다.

이 모든 변화는 뇌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장에서 ‘시작된’ 문제일 수 있다는 점에서, 폐경기 이후에 나타나는 심리적 증상과 소화기 장애를 따로 분리해서 보는 시각은 오히려 회복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폐경기와 '뇌-장 축(Gut-Brain Axis)' 변화: 불안감과 소화기 장애

 

뇌-장 축 회복을 위한 실질적 루틴: 감정 조절은 장 건강에서 시작됩니다

‘기분이 안 좋으면 위장도 뒤틀리는 느낌이 든다’,
‘속이 더부룩하면 마음까지 울렁거린다’는 표현은 단지 감정의 비유가 아니라 실제 신경생리학적 반응의 반영입니다.
그러므로 뇌-장 축을 회복시키기 위한 첫 걸음은 장과 뇌를 동시에 안정시키는 일상 루틴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첫째, 규칙적인 수면과 식사 시간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장내 리듬이 안정화되며 뇌의 자율신경계 반응이 회복됩니다.
특히 밤 11시 이전의 취침은 장내 미생물의 성장과 재생 시간대와 맞물려 소화기 회복 뿐 아니라 감정 안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둘째,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단은 유익균의 먹이가 되어 장내 환경을 개선하고, 세로토닌 분비에 관여하는 ‘트립토판’이 풍부한 식품(예: 바나나, 두부, 귀리)을
충분히 섭취하면 뇌 내 감정 전달 경로가 보다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

셋째, 프리바이오틱스(예: 양파, 마늘, 치커리)와 프로바이오틱스(김치, 요구르트 등)를 함께 섭취하는 식사법은 폐경기 이후 감소된 유익균의 회복을 돕고, 장 점막 염증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또한 매일 20분 이상 햇빛 아래 걷기나 복식 호흡을 병행하면, 부교감신경이 자극되어 장운동이 자연스럽게 활발해지고, 심리적 긴장감 역시 완화됩니다.

저는 장 건강을 위해 아침마다 따뜻한 물 한 잔과 식이섬유 파우더를 마시고, 저녁에는 라벤더차를 마시며 책을 보는 루틴을 유지했는데, 한 달쯤 지나자 소화불량이 거의 사라졌고, 무엇보다 ‘괜히 불안한 느낌’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감정은 뇌가 느끼는 게 아니라, 때로는 장을 통해 뇌가 전달받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을 이 경험으로 처음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이 흔들릴 땐, 내 장도 같이 흔들리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흔히 몸과 마음을 따로 떼어 생각합니다.
‘기분이 안 좋아서 소화가 안 되는 것 같다’고 말은 하지만, 그 둘이 실제로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는 잘 인식하지 못하곤 합니다. 하지만 폐경이라는 전환기를 지나면서, 우리는 몸의 작은 변화가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점점 더 실감하게 됩니다.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이 줄고, 자율신경계의 균형이 흔들리며, 장 점막이 약해지고 염증 반응이 증가하는 이 시점에, 마음까지 무기력해지고 불안정해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뇌-장 축’은 단지 의학 논문에 등장하는 용어가 아니라, 내가 오늘 하루 얼마나 예민했는지, 음식이 잘 소화되지 않았는지, 잠이 제대로 오지 않았는지를 설명해주는 현실적인 언어입니다.
특히 폐경기 이후 여성의 몸에서는 이 축이 더욱 민감해지고, 조금만 리듬이 어긋나도 장이 보내는 신호가 뇌를 자극하고,
뇌의 반응이 다시 장을 경직시켜 악순환을 만들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흔히 위장약이나 기분전환, 혹은 그저 시간이 지나기를 기대하지만, 사실 진짜 필요한 것은 ‘신체 내부의 연결 구조’를 회복하는 조율입니다.
위장을 따뜻하게 하고, 식사 시간을 규칙적으로 유지하고, 매일 10분이라도 햇빛을 쬐며 걷는 습관, 이런 작고 단순한 실천들이 뇌-장 축을 안정시키는 가장 본질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탓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갑자기 예민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불안감이 올라오고, 속이 자주 더부룩해지는 이 모든 변화는 의지가 약하거나 감정이 불안정해서가 아니라, 내 몸이 새로운 균형을 찾기 위해 복잡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과정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저도 한동안은 ‘왜 이렇게 내가 예민하지?’라는 자책으로 시작한 하루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감정이 단지 내 뇌만의 문제가 아니라, 속이 좋지 않았고, 수면이 불안정했고, 장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비로소 회복의 시작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몸이 불편하다고 느껴지신다면, 감정이 흔들릴 때 그 원인을 장에서 찾아보는 것도 좋은 접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장을 위해 내가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얼마나 쉬었는지, 어떻게 숨을 쉬었는지를 돌아보는 것, 그 하나하나가 뇌-장 축을 회복시키고 내 정서도 함께 안정시키는 진짜 힐링의 시작이 됩니다.

폐경기는 우리 몸이 스스로를 재설계하는 시기입니다.
그 시기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축이 바로 장과 뇌라는 점을 기억하세요.
그 연결을 회복할 수 있다면, 단지 소화만이 아니라 감정, 수면, 에너지, 인간관계까지 더 건강하게 정돈될 수 있습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는 늘 조용하지만, 그 신호를 먼저 듣는 사람이 결국 자기 회복의 방향을 가장 먼저 찾게 됩니다.
이제는 장이 보내는 소리를, 마음이 보내는 소리처럼 소중하게 들어주어야 할 때입니다.